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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태_순수함으로 빚어낸 동심의 세계
홍경 한(미술평론)
1.
작금의미술계를 바라보며 드는 불편한 시각들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일단의 유명세나 인지도, 그로인한 작품 값이반드시 예술의 본질을 함유한 창작의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기준에 적합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가 늘 마주하는 그 대상 자체가 매뉴얼화 될 수 없는 예술이고 여타 장르와는 달리 스토리의 받아들임이 다양할수밖에 없는 미술이기에 반드시 규정적일 수 없지만 한국미술사에 있어 드러나듯 일부 작가들에 대한 왜곡된 가치, 소수메이저 화랑과 평자들에 의해 자행되곤 했던 바람직하지 못한 의도의 다분함은 엄격한 의미로서의 예술적 평가를 과연 정당하게 부여해 왔는지 의구심을갖게 한다. 작가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그 어떤 것들보다 그 창작의 결과 즉, 창작품에 있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를 냉정하고 투명하게 밝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하지만 아쉽게도실제로는 그것 이외의 주변 요소로 인한 영향이 지대하며 그에 따른 진정성이 배타적으로 변질되거나 훼손되어가고 있는 현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음이다. 작가 김홍태는 그런 면, 즉 “창작의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기준”의 본질을 재생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독특한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소위 자의반 타의반 비주류로 분류되어 본의 아니게 빛을 보지 못하거나수면위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함을 부정할 수없는 국내 화단의 두꺼운 벽을 다른 무엇도 아닌 작품성 하나로 헤쳐 나가는, 정도를 걷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4년도에 <상 갤러리>에서개최된 그의 제 2회 개인전 즈음이었다. 월간『미술세계』편집장을 맡고 있던 필자는 그의 그림을 아주 우연히 접할 수 있었고 작가에 대한 부수적인 정보 하나 없는 상황에서 기존 청탁 받은 원고를 철회하면서까지그에 대한 장문의 기사를 작성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그 배경에는 오로지 심도 있는 작품이 존재했기에가능했다. 실제로 그가 펼쳐 보인 그림들은 내게 작은 놀라움을 안겨주는 것들이었다. 그의 회화들은 밝고 명쾌한 색이 그와 대조적인 색을 동반한 채 작가 자신과 밀접하게 호흡하고 있었으며 동양화에서나보일 듯한 선묘의 변화는 꽤 인상적이었다. 간헐적으로 드러나는 물파(Neo-wavism)적자유분방한 선들의 흐름, 적절하게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면분할, 그리고이들이 연출하는 상호간 대비를 통한 팽팽한 긴장감은 그림에 생기를 잔뜩 불어 넣는 형국이었다. 여기에전반적으로 동화(童話)처럼 이야깃거리를 연상(聯想)시키는 구조(organization)와소박하고 순수하며 격식 없이 생동적으로 꿈틀거리는 여러 무의식적 형상들(굳이 오토메티즘을 연상치 않아도)은 연륜을 가늠하기 힘들만큼 동심의 세계를 유추케 했다. 물론 그때나지금이나 그가 표현해내는 화면에는 삶을 생각하게 하는 원초적인 조건들이 녹아 있으며 종교적인 관념에서의 생명의 귀중함과 우리네 인간사에 필요한상생(相生)의 바람이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달라진 게 없지만처음 접했을 때의 그 느낌들은 마음 깊이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이후 조화와 균형감각으로 작품을 형상화해얻은 개인전에서의 좋은 반응들은 미국 유수의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는 등의 결과로 재 빚어지기도 했으며 차년도 전시를 비롯한 폭넓은 활동의 기회를제공받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진정성 없이 재주만 부리는 얄팍한 쇼맨십이 아니라 작품 하나하나의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여전한 긍정성으로 남아있다.
2.
예술에있어 정도(正道)란 개인적으로 흔들림 없는 고유의 가치이자예술가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기본 조건이며 동시에 정신성의 함축이랄 수 있다. 첫 개인전 이후 20년에 걸쳐 「코리아 아트 페스티벌」「대한민국미술대전」을 비롯 「한국의 미-그아름다움전」「기독교미술협회전」등의 그룹전과 초대전 등에 참여하면서 집중적인 구상과 모색을 선보이고 있는 김홍태는“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며 스스로에 대해 냉정한 잣대를 들이댄 채 수없이 많은 담금질을통해 자신만의 아우라(Aura)를 만들어 가고 있다. 여기서말하는 아우라는 그가 오랜 시간 지속해온 「원초성+동심」연작들에서 끄집어낼 수 있다. 동일한 제목들을 달고 있는 이들 시리즈는 바로 작가 김홍태의 표출의식을 응집하는 매개이자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에는 여러 기호적(記號的)인흔적들이 마치 장식문양처럼 담겨져 있다. 필자가 해석하기에 그것들은 인간 내면에 안주된 원초적인 삶을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자 지향점들이다. 시간을 무대로 켜켜이 쌓아올린 지난한 삶의 흔적, 또는 내적 심상의 세계로 향한 표상 등이 곧 삶의 미로(迷路)를 빠져나와 그 궁극성을 암시하는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 추상화의특성상 언뜻 보기에 막연한 감이 없지 않고 작가가 작품에 담고자하는 뜻이 난해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것이표상하는 회화성은 할성화된 창의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관심과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우선 그의 작품들은선사시대의 벽화나 원시미술에서의 선각(線刻) 형상처럼 극히원초적인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회색을 포함한 단색조의 색감, 투텁게발라지거나 걷어낸 물감, 몇몇 재료를 활용한 마티에르 내에 숨겨져 보일 듯 말 듯 한 일루전(Illusion)의 형상들은 양자 간 상부상조하면서 공존, 변화하며생동감을 만들어 낸다. 이 부분은 김홍태 작품의 외형적 변별력을 유지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조금 더 안을 들여다 보자. 그의 작품이 동화적이면서도 어느 신비의깊이를 엿보이고 있는 바는, 우의적인 여러 기호가 다양하게 회화적(繪話的)인 개입과 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결국 그의 활성적인창의력은 삶과 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서 시작되지만 이것이 『슈탄다르트(stand art)』와 유사한개념처럼 기호로 환치되면서 보다 명료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에 혹자는 그와 흡사한 조형언어들이 많으니딱히 어느 누구에게 국한 시키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여실한 차이를 나타내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바로 그의 작품들이 순수한 ‘소박감’을 생성한다는 것이다. 순수한 소박성은 그에게 있어 동심으로 피어난다. 예수가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그는 그림을 통해 나이를 삼키지 않고 뱉어낸다. 오히려 화력이 더해질수록 단순해지고 정제된 화풍으로연계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것은 오늘날 작가 김홍태의 작품성을 이해하는 핵심키워드(keyword)이다. 작가에게 있어 동심은 원초적인 근원에로 회귀하게한다. 사실 동심과 원시성은 단순함과 순진무구함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모든 의미가 단순성 속에 압축되어 있거니와 상징성이 강하다는 특징도 별반 다르지 않다.
3.
그의작품을 보면 여러 가지의 구성적 요소들이 자유롭게 평면적 차원의 공간을 메우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길거나짧은, 혹은 뭉툭하거나 각진 면과 선이 만나고 동색과 보색이 색감과 색감으로 어우러지며 직과 원이 호흡하는양상은 우리가 인지해 마지않는 습관적인 시각관념을 무시한 채 자유롭게 전개되는 양식을 갖는다. 이젠더 이상 오래전 수채화가로서 활동했던 습속성은 찾을 수 없고 원근법이라든가 뚜렷한 형상 역시 나타나지 않지만 탈공간과 쌓여진 시간성이 겹치고 배어나오는 그의 그림을 통해 타자들은 복합적이고 다시적(multiple vision)인 공간을 느낄 수가있다. “화가로서의 삶은 지금부터”라며 한국의 문화 1번지라는 인사동에서의 연이은 전시에 이어 밀알 미술관 초대전, 미국과유럽 등지역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활동을 통해 끊임없는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 김홍태. 화가로서는드물게 1982년 한국방송공사(KBS) 특별 프로그램에 출연해자신의 포부를 밝힌 지 어느새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비록작품의 양식과 장르는 변화했지만 예의 그 담백하고, 소박하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느낌의 경향은 져버리지않았다. 아니, 그것들은 되레 시간의 간극을 뛰어 넘어 세상의모든 모난 것들을 특별한 이질감 없이 순화 적으로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전이되고 있으며 근원성을 발판으로 한 동심의 세계는 더욱 점층 되어 가고있다. 그래서인지 김홍태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들은 대체로 꾸밈이 없고 가식이 없으며 생명력이 강하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순박한 심미적인 구상성(構想性)을 음미할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