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HONG 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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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English


동심의프리즘을 통해 본 근원형상

고충 환(미술평론)


인류최초의 그림은 뼈나 바위에 새기거나 그린 암각화이며 낙서였다. 대상을 최소한의 선으로 간략하게 표현하거나혹은 아예 대상이 없는 추상적 선묘로 나타난 이 일련의 그림들을 일컬어 프리미티브아트라 한다. 비록최소한의 묘사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꿈이 내재돼 있다. 풍요와 다산을 바라는 욕망, 생활의 전모를 낱낱이 기록하고 싶은 욕망(주지하다시피 그림문자나상형문자는 이미지의 기원과 관련이 깊다), 닮은꼴을 통해 그 대상을 우회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실재와 이미지와의 동일시현상으로 나타난), 신을 어르고 달래기 위한주술적이고 제의적인 욕망 등이 읽힌다. 이렇게 성()과 속()을 아우르고,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미학적인 지점을 관통하고, 그리고 형이상학과형이하학에 두루 걸쳐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프리미티브아트는 재현과 서사, 미니멀리즘(최소한의 형식), 드로잉과낙서회화(유아의 심성을 연상시키는 분방한 선묘), 오토마티즘(정신보다 더 심층적인 무의식의 표상형식)과 그리고 영적인 경향 등의현대미술과 관련한 주요 개념이나 현상들의 보고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원초적이고 순수한 이미지로부터현대미술의 저변을 지지하고 있는 근원형상이나 원형상(모든 형상이 유래한 원천이나 모본)을 떠올리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김홍태는 마치 어린아이와도같은 마음을 통해서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형상을 그린다. 그 이면에선 프리미티브아트에서의 영적인 정신세계와유아의 그림에 나타난 순진무구한 세계(그 자체 일종의 나이브아트와도 통하는 것)가 시공을 초월하여 하나의 결로 흐른다. 그리고 이를 현대미술 중특히 추상미술의 핵심논리인 모더니즘 서사와 연결시킨다. 그러니까 유형무형의 대상을 재현하려는 형상미술보다는순수한 형식논리에 바탕을 둔 추상미술에 가깝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예술의 자율성과 장르적 특수성에 경사된 모더니즘 회화의 환원주의 논리와 그맥을 같이한다. 흔히 모더니즘 서사로 알려진 그 논리는 회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형식적 요소들이를테면 점, , , 색채, 그리고 질감을 회화의 본질로 간주하는 한편, 이러한 본질적 요소에의해 비로소 순수한 회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회화를 회화이게끔 해주는 조건을 형식적인 요소에서찾았던 만큼 현실적인 삶을 암시해주는 성질들 이를테면 의미나 내용, 재현과 서사는 소위 순수한 회화의견지에서 볼 때, 이를 훼손하는 불순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회화는 삶과는 관련이 없거나 이와는 다른 그 자체만의 자족적인 구조와 원리와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형식적 요소들 가운데서도 특히 평면 혹은 평면성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본질이라는 것이다. 아무것도그려지지 않은 텅 빈 화면이나 평면이 비록 뛰어난 회화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미 그 자체로써 회화의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 클레멘테 그린버그로부터 모더니즘 서사에 반영된 청교도주의와 엘리트의식이 느껴진다.김홍태는 모더니즘 회화의 형식논리를 수용하는(그림에서 이는 현저한 평면화의 경향성으로서나타난다) 한편, 이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특히 그 논리에 내재된 일상 혹은 삶에 대한 배타적인 입장을 의심하는 한편,프리미티브아트에 연유한 영적인 에너지와 흡사 유아의 낙서를 보는 것 같은 격이 없는 드로잉으로써 이를 보충하고 변주한다.


작가는주로 붓 대신에 나이프를 이용해 편평한 화면을 조성한다. 이때 간혹  모래를 이용해서 특유의 마티에르 효과를 연출하는가 하면, 부분적으로 테이핑 작업을 도입해(화면에다 테이프를 붙인 연후에 그위에 칠을 하고 테이프를 떼어내는) 각종 크고 작은 띠 모양의 문양을 만들어낸다. 문양은 전통적인 초롱이나 색동 띠를 연상시키는데, 화면의 대부분을차지하는 무채색에 바탕을 둔 중성적인 색면과 부분적으로 도입된 원색적인 화면이나 조형요소가 서로 어우러져서 화면에다 일정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더불어서 주로 브라운과 그레이 계통의 색채를 주조 색으로 해서, 이를수차례에 걸쳐 덧발라 올린 화면에서는 일종의 중층화된 색의 지층이 만들어지고, 이로써 화면에 깊이감을더한다. 그 위에다 끝이 뾰족한 도구들을 이용해서 화면을 긁어내는데,그 방식이나 과정이 그대로 고대 선사시대의 암각화를 연상시킨다. 숙련된 손놀림에 의한 분방한드로잉과 거침없는 필선이 돋보이는가 하면,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마음이 그려낸 낙서그림이 연상되기도한다. 유아의 그림에서 사전에 미리 정해진 형식이 있을 수 없듯이 그때그때의 순간적인 착상에 의해 그려진즉흥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렇듯 일종의 자유연상기법에 의해 대부분의 프로세스가 촉발되고 있는  듯한 그림의 이면에서 프리미티비즘과 동심의세계표현이 날실과 씨실처럼 긴밀하게 짜여있는 것이다. 심지어 프리미티브는 작가의 그림 속에서 다양한문자의 형식으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그럼으로써 그 개념이 작가의 작업과 의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가가 분명해진다. 설핏 무의미하게 보이는 화면상의 선묘는 실상 문자와 기호와 형상이추상화된 것들이다. 변형된 서체, 집이나 자동차 모티브, 일필휘지한 듯한 새나 개 모양의 형상과 일련의 숫자들. 모르긴 해도그 숫자들 중에는 작가 자신의 생활세계로부터 채집된 것들 이를테면 전화번호나 차 넘버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그림에는 이런 식으로 삶의 감정이 묻어나고, 그 생생한 현장성이 스며들어 있다. 마치 생활일기나 그림일기에서처럼 선묘는 그 자체 조형적인 요소로 기능하는 한편, 동시에 그 속에 일정정도 상징적 의미를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무분별한 스크래치를 무의식의 표상(그 자체 자동기술법과도 관련이 깊은)으로읽을 때, 그것이 일종의 존재론적 상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작가는 그림에다가 마치 창문처럼 작은 화면을 배치함으로써 구조적으로 일종의 이중그림을 실현하고 있다. 서로 이질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속된 별개의 서사가 중첩된 액자소설처럼 화면의 가장자리에 그려진 그림과 화면의가운데 그려진 그림이 서로 대비되는 동시에 어우러진다. 이로써 화면에 일정한 변화와 역동적인 긴장감을부여해주고 있는데, 이러한 대비효과는 나아가 아예 서로 대비되고 비교되는 두개의 화면을 나란히 병치시킨경우로 확대되기도 한다. 이때 한 화면은 심플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며,다른 화면은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역동적이고 분방한 필선이 자유자재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는물론 화면 자체의 자족적인 존재성이나 회화의 내재적 원리를 표현한 것이지만(이를테면 대비효과가 내적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와 동시에 그 자체 상징적 의미로써 읽히기도 한다. 말하자면 두 화면은 각각 의식과 무의식, 카오스(혼돈)와 코스모스(질서), 음과 양, 그리고 명과 암으로 대변되는 삶의 두 측면을 암시해주고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작가는 일련의 한지그림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들그림에선 배채법이 적극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화면의 이면에서도 그리고 전면에서도 동시에 이미지가 덧그려지는식이다. 이로써 다른 종류의 질감이 한 화면 속에 공존하게 된다. 이는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그림들과는 그 인상이 사뭇 달라 보인다. 결정적으론 불투명한 화면과 투명한 화면과의대비되는 질감이나 색채감정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들 그림에서 작가는 전통적인 유산을 자기화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창호나 발과 같은 빛을 걸러내는 장치를 통해 세계를 한 발치 떨어져서 관상하기를 즐긴 옛사람들의 미의식을그림 속에 담보하는 것이다. 이로써 김홍태의 그림은 장인의 공력이 느껴지는 절제된 마무리와 이를 깨는파격이 한 화면 속에서 서로 충돌하고 어우러진다. 고대 선사시대의 암각화 양식을 추상화의 화법 속에녹여내는 한편, 어린아이의 낙서를 연상시키는 분방한 필선이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형상을, 그 원형의식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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